블루스(영어: blues)는 19세기 중엽, 미국 노예 해방 선언 이후 미국으로 넘어온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창시한 장르[1] 혹은 음악적 형태를 말한다. 이 장르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과 노동요,[2] 그리고 유럽계 미국인의 포크송을 뿌리로 두고있는데, 구체적으로 스피릿튜얼스, 노동요, 필드홀러, 링 샤우트, 찬트, 그리고 리듬이 간단하고 경험을 풀어낸 발라드 등이 합쳐져 개인이 부르는 노래로 바뀌어 블루스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블루스 형식은 재즈, 리듬 앤 블루스, 로큰롤의 안에서도 볼 수 있는데, 주고 받기 형식(Call and Response), 블루스 스케일을 이용한 여러 코드 진행, 두 박자 또는 네 박자의 12마디로 진행되는 블루스가 일반적이며 장조와 단조가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 블루 노트는 보통 3도, 혹은 5도 플랫된 음을 말하는데, 이 음들은 블루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리라 볼 수 있다. 블루스 스케일, 블루스 노트 그리고 셔플 블루스, 혹은 워킹 베이스를 포함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루브가 생겨난다.
블루스는 장르로서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가사와 베이스 라인, 그리고 악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초기 전통적인 블루스 벌스에선 한 문장의 가사를 4번 반복해서 불렀다. 이것은 현재 나와있는 구성이 일반화 되기 전 20세기 초의 형태이다. 초기의 블루스 (컨트리 블루스)는 해방된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 환경, 인간적인 슬픔, 고뇌, 절망감 등이 드러나 있고, 대부분 본인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나 경험, 그리고 아프리카-아메리칸의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길거리 술집이나 시장터 축제에서 연주하는 블루스맨들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졌고, 독특하게 느린 블루스의 리듬은 백인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많은 춤 곡들이 나왔으며, 그러한 음악과 춤에도 블루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블루스가 부각되기 시작한 건 19세기 말이다. 초기 블루스 스타일은 컨트리 블루스와 대개 솔로 가수가 직접 기타, 피아노 연주를 하고, 가끔 하모니카와 드럼이 같이 연주를 했다.[2] 당시 잘 알려진 컨트리 블루스 뮤지션들은 레드 벨리,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 그리고 로버트 존슨 등이 있다.
블루스라는 말이 노래에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90 ~ 1900년대 초이지만, 어원에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그 중 아프리카인의 장례 의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블루 데빌스(Blue Devils)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현재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블루 데빌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아프리카인의 장례 의식 설은 남부 아프리카인들이 죽음을 맞아 의식을 치를 때 의복을 청색(블루)으로 물들여 입음으로써 자신들의 슬픔, 고통 등을 표현한 데서 블루스란 말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남부 아프리카인들이 청색으로 물들일 때 사용하던 식물이 바로 '인디고페라 틴토리아'이다. 이 식물은 미국 남부 노예 농장에서 많이 자랐다. 이 풍습과 서부 아프리카 노예들이 목화를 재배할 때 부르던 노동요를 합쳐 우리가 알고 있는 블루스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블루 데빌스는 우울과 슬픔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말은 조지 콜먼(George Colman)의 원맨 광대쇼 〈Blue Devils〉 (1798)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3] 17세기 영국의 표현 중 "강렬한 시각적 환각을 동반한 심한 알코올 금단 증상intense visual hallucinations that can accompany severe alcohol withdrawal"이란 용어를 줄여 블루 데빌스라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시간이 흘러 블루만 남아 블루스(Blue Devils)가 되었고 불안 상태 혹은 우울한 상태를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19세기 미국에선 블루스는 취하다란 속어로 쓰였다. 이러한 뜻을 가진 블루스와 음주(drinking)가 합쳐져서 '블루 법Blue laws'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블루 법은 아직도 몇몇 미국의 주에서 시행되는 일요일 알코올 판매 금지 법이다.[
초기 전통 블루스 도입부 가사는 하나의 구절이 4번정도 반복되었던 것으로 본다. 이것은 20세기 초까지의 형태이다. 이것을 AAB 패턴이라 칭하는데, 음악의 4마디를 먼저 구성하고, 그 다음 4마디는 앞 4마디를 반복하며, 다음 4마디는 끝나는 구절로 길게 만들었다.[5] 〈Dallas Blues〉 (1912), 〈Saint Louis Blues〉 (1914)는 12마디 형식의 AAB 가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 가사들은 보통 리듬 있게 말을 하여 패턴을 구성하고 그 위에 멜로디를 얹는 방식이었다.[6] 초기 블루스는 대개 경험에 입각한 이야기를 풀어 자유롭게 만들었다. 아프리칸-아메리칸 싱어들은 그녀 혹은 그들의 사적인 고통 혹은 사회적 부조리함을 현실적으로 담아내었다. 그 중에선 실연, 당시 경찰관들의 잔인함, 백인들의 억압, 힘든 시기등이 있었다.[7] 이렇듯, 가사들은 보통 아프리카-아메리칸의 사회에서의 경험, 사고 등을 이야기했는데, 다음은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의 〈Rising High Water Blues〉 (1927)에서 말해주는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이다.
"Backwater rising, Southern peoples can't make no time"
"물이 차오르네, 남부 사람들은 시간을 못 맞출 것 같네"
"I said, backwater rising, Southern peoples can't make no time"
"내가 말했지, 물이 차오른다고, 남부 사람들은 시간을 못 맞출 것 같네"
"And I can't get no hearing from that Memphis girl of mine."
"그리고 내 맴피스 여자에 대해 아무 소식이 없었네."
또한 블루스는 우울, 불행, 억압을 받으며 가사또한 풍자화되었다.
"Rebecca, Rebecca, get your big legs off of me,"
"레베카, 레베카, 너의 큰 다리를 내게서 치워줘,"
"Rebecca, Rebecca, get your big legs off of me,"
"레베카, 레베카, 너의 큰 다리를 내게서 치워줘,"
"It may be sending you baby, but it's worrying the hell out of me."
"너를 보낼수도 있지만, 내게서 벗어나는게 문제네."빅 조 터너의 〈Rebecca〉
블루스는 음악적으로 따지면 독특한 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도레미파솔라시도'의 7음 가운데 미와 시가 반음 내려가고 (b), 파는 반음 올라가 (#), 3음이 블루지한 상태를 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정확히 반음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닌 피아노로는 어려운 미분음의 개념이다. 이 반음 가까이 낮아지는 음을 블루 노트라고 한다. 또한 코드 진행상 '도미넌트 코드 (Ⅴ)' 앞에 '서브 도미넌트 코드(Ⅵ)' 가 위치하는 일반 패턴과 달리, 도미넌트가 서브 도미넌트를 앞선다. 또한 '도레미파솔라시도' 가 아닌 '도시라솔파미레도' 의 순으로 높은 음에서 내려오는 이른바 하행 선법이다. 여러모로 클래식이 확립해놓은 양식과 개념에서 일탈해있는 음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블루스의 탄생 배경에서 '흑인 노예' 및 '목화 밭에서의 노동'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흑인 노예란 피압박 인종을 뜻하며, 목화 밭에서의 노동이라는 것은 블루스가 노동가, 혹은 노동민중의 가요임을 알려준다.
처음 발매된 블루스는 1908년 안토니오 마지오의 〈I Got the Blues〉이다. 그 뒤를 이어 하트 반드의 〈Dallas Blues〉가 1912년 발매되었고, W.C. 핸디의 〈Memphis Blues〉가 같은 해에 나왔다. 처음으로 녹음된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수는 마미 스미스, 1920년 페리 브래드포드의 〈Crazy Blues〉이다. 하지만 블루스 기원은 10년 전쯤 일찍인데, 1890년도 정도로 추정된다.[12] 블루스는 미국 남부 목화 농장의 노예들로부터 시작된다. 남북전쟁 이후, 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에 의해 불리었던 할러, 혹은 노동요로 불리는 음악들은 농장제가 없어지면서 동시에 소멸되었지만, 아프리카적 요소들을 고스란히 도입하고 있던 이러한 음악들이 민스트럴 쇼, 교회에서 불리던 복음성가 등과 합쳐지면서 렉타임, 부기우기 등으로 발전 되었고, 블루스의 원류를 형성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따라서 블루스는 본질적으로 아프리카적 미국 음악이다. 그리고 블루스가 완전한 형태를 이룬 것 역시 농장제의 와해와 맞물린 19세기 후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오늘날 블루스의 기본적인 형태인 12마디 블루스 역시 이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에 주로 쓰이던 형태는 12마디 블루스가 아닌, 8마디 블루스가 2번 나열되는 형태였다.
〈The Memphis Blues〉, W. C. 핸디에 의해 1912년에 작곡 되었고, 빅터 레코드사에서 녹음 되었다. 핸디의 알려진 첫 상용 음반이었고, 성공한 첫 블루스 음반이었다.
흑인인 마미 스미스가 부르고 페리 브래드포드가 연주한 첫번째 노래가 있는 상용 블루스 음반인 1920년 〈Crazy Blues〉
〈Keep your lamp trimmed and burning〉텍사스 가스펠 싱어인 블라인드 윌리 존슨 (보컬, 기타), 윌리 B. 헤리스 (보컬)이 1927년에 부른 전통 스피릿튜얼스 음악이다. 가스펠과 블루스가 얼마나 밀접한 인연이 있는지 보여주는 예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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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는 20세기 초, 남부 텍사스와 미국 남부에서부터 기록되기 시작된다. 찰스 피바디가 블루스는 미시시피의 크락스데일에서 나타났다 하고, 게이트 토마스는 1901~1902년 사이 남부 텍사스에서 매우 비슷한 노래가 나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조합하면 어느 정도 일치하긴 하는데, 젤리 롤 모튼의 기억에 의하면 1902년 뉴올리언스에서 처음으로 블루스를 들었다 한다. (마 레이니, 그녀 또한 같은 해에 미주리에서 처음으로 블루스를 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W.C. 핸디 또한, 블루스를 1903년 미시시피의 트월러에서 들었다고 하는데, 그의 감상평은 이러했다. "살면서 들은 것 중 제일 이상했던 음악이었다. The weirdest music I had ever heard."[13] 처음으로 이것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시작한 사람은 하워드 W. 오덤인데, 1905년에서 1908년 사이에 미시시피의 라파예트, 조지아의 뉴톤 카운티에서 방대한 포크 노래를 출판한 사람이다.[14] 첫 번째 비상업적 목적의 블루스는 폴 올리버의 〈Proto-Blues〉인데, 이것을 오덤이 20세기 초 연구 목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부 소실되었다.[15]
1924년 로렌스 겔러트에 의해 발매된 음반은 아직도 들을 수 있다. 이후, 미국 의회도서관 미국 포크송 기록 보관소의 의장이 된 로버트 W. 고든에 의해 음반이 더 많이 발매된다. 그의 후임으로 존 로맥스가 되는데. 1930년에 로맥스와 그의 아들 알렌은 실험정신을 가진 필드홀러, 링 샤우트와 같은 장르의 비상업성 블루스 음반을 많이 제작하였다.[16] 현재까지도 찾아볼수있는 1920년대 이전 음악은 〈Lead Belly[17]〉 와 〈Henry Thomas[18]〉가 있다. 그들의 음악은 현존하는 12마디 블루스, 8마디 블루스, 16마디 블루스와는 전혀 다른 형식을 보여준다.[19][20]
블루스가 나타나게 된 경제적, 사회적 이유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21] 첫 출현 시기를 보통 1870~1900년대 중 노예 해방 선언 이전, 혹은 주크 조인트가 생겨난 뒤라고 생각한다.[22] 이 시기들은 과도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기에 노예제도를 통한 노역, 작은 규모의 농업생산, 미국 남부에서 기차길이 확장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몇몇 학자들은 1900년대 초반에 그룹의 의견보다는 개인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블루스가 발전된 것을 특징이라 본다. 그들의 사회 속 불만을 이용해 만들어진 블루스의 발전은 근대에 이루어진 노예 해방 선언과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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