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 시민 촛불(약칭 1차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에 열린 첫 번째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이다. 총 20차례에 걸쳐 진행된 촛불집회의 서막을 여는 집회로서, 주최추산 3만 명, 경찰 추산 1만 2000명의 시민이 참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였다.
2016년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 씨의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PC를 입수해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대통령 연설문을 주고받은 정황이 담겼다고 보도하고,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통해 최순실과의 사적 관계를 일부 시인함으로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촉발되기 시작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시민사회가 받았던 거대한 충격은 머지않아 대학가의 시국선언과 집회 등으로 표출되기 시작하였으며, JTBC의 보도 이후 첫 주말인 10월 29일에 서울 도심가에서 대규모 촛불 시위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첫 집회는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사전 촛불집회를 진행, 각계 인사들이 규탄 발언과 시국선언을 진행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청계광장을 떠나 행렬을 이루어 인사동까지 행진한다는 계획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행진 도중 종로1가에서 시민들은 청와대로 직진하려 하기 위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였다. 광장에 설치됐던 경찰의 차벽에 막힌 시민들은 경찰들과 최종 대치 상황을 이어갔고, 밤 10시 주최측의 집회 종료 선언으로 공식적인 집회는 마무리되었다.
이날 시위는 민중총궐기 등 이전까지의 집회와는 다르게 비교적 평화적인 시위로 진행되었다. 시민들은 시위가 폭력으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일부 시위대에게 충돌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고, 경찰도 시위대를 크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시민들에게 정중한 어조의 방송을 내보내거나 살수차 등의 진압도구 현장 투입은 시도하지 않았다. 다음날 서울경찰청은 이성적으로 협조해준 시민들에게 감사를 표명하는 보도자료를 이례적으로 내기도 했다. 한편 투쟁본부는 이날 집회를 시작으로 매일 청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할 것을 발표하고, 다음주 집회와 오는 11월 12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였다.
2016년 8월 미르재단 설립 의혹이 TV조선으로부터 처음 제기된 이후, 2016년 9월 20일 《한겨레》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에 최순실 씨가 개입하였다는 사실을 보도함으로서, 최순실 씨를 둘러싼 언론의 의혹 제기가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는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태와 백남기 농민 사망 및 부검영장 청구 등의 사회적 파문과, 정기 국정감사를 통한 야권의 비판이 이어졌다. 10월 중순부터는 JTBC와 TV조선, 한겨레를 비롯한 각 언론들이 재단 비리 의혹, 정유라 부정입학 사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본격적으로 취재되면서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핵심 화제로 떠올랐지만, 박근혜 정부는 재단 설립이나 연설문 수정 의혹을 비롯해 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기본 사실을 완고히 부인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B]
그러나 2016년 10월 24일, JTBC 〈뉴스룸〉은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대통령 연설문 44건을 최순실 씨가 미리 전달받았다는 정황이 담긴 태블릿 PC를 입수했다고 보도하였다. JTBC의 첫 보도는 태블릿 PC에 담긴 내용 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신분의 최순실 씨가 대통령 국정운영 문서를 공유하였다는 사실이 실체로 밝혀지는 순간이었기에 대한민국 사회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8]
결국 다음 날인 10월 25일 오후 4시,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사과를 진행해 "최순실 씨는 과거 어려울 때 도와준 인연"으로서 "일부 연설문 등은 최순실 씨에게 도움받았다"며 시인하였다. 그러나 1차 대국민사과는 지금까지의 사태를 '개인적 인연'으로만 설명하려는 태도로서 대통령이 정말로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무거운 책임을 인식하였다고는 볼 수 없었기에, 오히려 박근혜-최순실 관계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결과만 낳았다.[8] 대국민 사과 직후인 4시 35분경 네이버와 다음의 인기검색어에는 "탄핵"이나 "박근혜 탄핵", "하야" 등의 키워드가 상위권에 올랐다.[9] 여론도 급격히 악화해 리얼미터의 박근혜 대통령 국정 지지도 조사에서는 25일에는 22.7%, 26일에는 17.5%로, 불과 이틀 만에 10%대로 주저앉은 것으로 조사되었다.[10]
JTBC의 보도와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이후 사회적 충격은 곧 규탄으로 바뀌었다. 대국민사과 이튿날부터는 각 대학과 시민단체의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10월 26일 이화여자대학교, 경희대학교,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를 시작으로 28일까지 단 3일 만에 41개 대학이 시국선언에 참여하였다.[11] 10월 27일부터는 성균관대학교 교수 31명, 경북대학교 교수 88명 등 대학교수들도 시국선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12] 더욱이 10월 26일 저녁부터는 진보대통합연대회 서대문지회 주최 집회를 시작으로 촛불집회 전날인 28일까지 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는 집회가 수차례 진행되었다.[11]
제1차 촛불집회를 주최하게 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오는 11월 12일 6차 민중총궐기를 준비하고 있던 상태였으며, 투쟁본부의 페이스북 공식계정에서는 26일 전까지만 해도 민중총궐기 이외의 별도의 대규모 집회 계획은 잡지 않고 있던 상태였다.[13]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심화되면서 26일 소규모 집회 공고에 이어 10월 27일에는 처음으로 '시민 촛불' 대회를 오는 29일 오후 7시 청계광장에서 진행할 것임을 공고하게 되었다.[14] 이에 대해 투쟁본부 측에서 처음부터 기획이나 조직화 계획 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집회 주최에 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민중총궐기를 준비하던 상태에서 1 ~ 3차 촛불집회의 주최를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떠밀리듯이" 맡게 되었다는 해석이다.[15] 집회의 공식 명칭은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였다. 이때 '1차'라는 차수 명기는 붙지 않았으며, 다음 집회인 11월 5일 집회부터 '2차'라는 차수가 명기되기 시작하였다.[16] 이 슬로건 자체는 11월 12일 제3차 촛불집회까지 사용되었다.
집회 전날인 10월 28일 SNS상에서 네티즌들은 '#나와라 최순실' 등의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며, "박근혜 탄핵집회, 29일 오후 6시 광화문광장"이라는 문구를 확산시켰다.[17] 한편으로 이번 집회를 앞두고 일부 온라인 오픈마켓에서는 양초 주문이 급증하면서, 공급처로부터 추가 주문을 요청하였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18]
10월 29일, 투쟁본부는 페이스북을 통해 당일 집회 안내문을 공지하였다. 첫마리에 "집회가 급작스럽게 잡히다 보니 문의가 많다"라고 소회를 밝힌 투쟁본부는 집회와 행진 등이 법적 절차에 신고되었다고 밝히고 초와 피켓 등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며, "박근혜 정권이 이 사태에 책임지는 방법은 물러나는 것밖에 없다"며 "시민의 힘을 보여주자"고 마무리하였다.[19] 경찰 측은 이번 집회가 최순실 씨 관련 의혹이 본격적으로 보도된 이후 처음으로 서울 도심에서 개최되는 것인 만큼, 규모나 강도 면에서 집회가 격렬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폭력 사태나 도심 교통 마비 같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수천명의 경찰력을 투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20]
집회에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는 당 차원에서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21][22] 우상호 민주당 대표는 "아직 장외로는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아직 정치권에서 그렇게 나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안희정 충청남도지사 등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22][20] 이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비판보다 수권 정당으로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감과,[21] "탄핵이나 하야 등 집회 참가자들의 요구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었다.[22] 반면 정의당은 당 차원에서 집회 참여를 결정하고, 당 지도부가 모두 참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20]
10월 29일 당일 오후 4시, 서울 집회에 앞서 전라북도 전주시에서는 전북버스노동조합 소속 버스기사들이 박근혜 퇴진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정각을 기해 운행 중 경적을 울리는 시위를 벌였다. 총 300여대의 전주 시내버스가 약 3분여간 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시위 관련 피켓을 버스 내에 부착해 전주 시민들에게 안내하였다.[23] 경적 시위는 지난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기도 했다.[24] 또 전주 세이브존 앞에서 촛불집회를 시작, 경기전 앞까지 대규모 행진을 진행하였다.[23] 같은 시각 광주광역시 금남로 5·18민주광장 앞에서는 '국정농단 박근혜 퇴진 촉구'가 열려 집회를 가진 뒤, 금남로를 따라 양동시장까지 약 4km 거리를 행진하였다. 이날 광주 집회에서는 시민과 진보단체 등 200여명이 참가하였다.[25]
영남권에서는 이날 오후 울산광역시 남구 태화강역 광장에서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산하 노조 등이 결성한 '민중총궐기 울산조직위원회'가 울산시민 총궐기대회를 시작하였다. 이 집회에서는 주최 측 추산 1,000명 (경찰 추산 8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참가자들은 1시간여 간 광장에서 집회를 진행하다 태화강역을 출발해 현대백화점 울산점을 거쳐 되돌아오는 코스를 따라 행진하였다.[26]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로 문화패션거리 일원에서는 33일째 파업 중인 철도노조 조합원과 대학생들이 '고마해라 성과퇴출제', '고마해라 박근혜'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거리행진을 하였으며, 오후 6시에는 부산역 광장에서 민중총궐기 부산준비위원회가 주최하는 '고 백남기 추모·정권 규탄집회'가 진행되어, 철도노조 조합원, 대학생과 시민 등 1000여명이 참가하였다.[27][26] 이밖에도 오후 7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는 민중총궐기 제주위원회가 주최하는 '최순실의 나라, 박근혜 하야 촉구! 제주도민 촛불집회'가 제주도청 앞에서 진행되었으며, 300여명이 참석하였다.[28]
집회 전 서울의 소규모 시위
서울에서는 오후 2시, 청소년 단체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소속회원 20여명이 종로구 안국동 북인사마당에서 '청소년 시국선언 1차 행동'을 진행, 고등학생 149명이 서명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후 이들 회원은 세종로소공원까지 행진하였다.[29] 비슷한 시각 청년참여연대는 광화문 광장에서는 "나라가 얼마나 개판으로 돌아가는지 신문 한번 읽어보자"라는 취지로 '침묵의 책읽기'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30] 3시 50분경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사용되어 '민중혁명'의 상징이기도 한 높이 4m 크기의 단두대가 광장에 등장했다. 확인 결과 실제 단두대가 아닌 조형물이었지만 경찰에 의해 10여분 만에 철거되었다.[30]
4시 30분에는 청년하다, 흙수저당 등 13개 청년단체 소속 200여명이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박근혜는 하야하라 분노의 행진' 집회를 시작하였다. 약 30분간 사전발언이 진행된 후 5시경에는 경희대, 성균관대, 한국외대 등의 대학생들과 시민 100여명이 마로니에공원에서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시작해 본 촛불집회에 합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학생들은 '시굿선언', '최순실 구속 퍼포먼스' 등을 진행하여 주목받기도 했다.[31][32][33][34] 오후 5시 종로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는 시민들로 구성된 '최순실시민행동'이 최순실 의혹 관련 진상규명 촉구집회를 열었으며[35] 이 집회 역시 행진을 통해 6시 본 집회에 합류하였다.[36]
전날까지 이어져 왔던 대학가의 시국선언은 집회 당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고려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카이스트·한양대·홍익대의 10개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한양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근혜 정부 퇴진과 최순실 게이트의 엄정 수사를 촉구했다.[2] 오후 시간대 네이버에서는 본 시위 장소인 '청계광장'이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31]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투쟁본부 주최의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C] 당초 진보단체 회원 등 2000명[41]에서 3000명[31][42]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주최 측은 3000~4000명이 집결할 것으로 추정하여 집회를 신고하였고 경찰 측도 이와 비슷한 예상치를 내놓았다.[2][30][43] 그러나 집회 시작부터 현장의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최종 집회참가 규모는 주최측 추산 30,000명, 경찰 추산 14,000명으로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44] 집회가 시작되던 무렵인 6시 10분 경 경찰 측은 "청계광장에서 모전교까지 참가자들이 가득 늘어섰다"고 전하기도 했다.[1] 이 때문에 주최 측 관계자는 행사 시작과 함께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너무 많은 시민들이 오셨다"며 "절대 사고가 나서는 안 된다. 안전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해야 했다.[35]
집회에는 혼자 온 사람부터 가족, 애인, 친구들과 함께 온 경우도 있었으며, 고등학생부터 심지어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던 노인층까지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44][45][46] 참가자들은 주최 측에서 제공한 '이게 나라냐', '박근혜 퇴진' 등이 적힌 피켓을 손에 들었으며, 준비해온 촛불을 다른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시민들도 있었다.[44][35]
촛불집회는 대체로 각계의 규탄 발언으로 구성되었다. 개회사에 나온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은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정치하는 사람, 정치꾼이 아니라 바로 여기 모인 모든 국민들 힘으로 독재자를 물리쳤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들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지 말고 즉시 퇴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47] 이어 국회의사당 앞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다 연행된 대학생이 연단에 등장해 일련의 시국선언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것 같다"며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말했다.[48] 또한 대학가의 시국선언을 거론하며 "이 일에는 대학생들이 앞장서겠다"고 발언하였다.[47] 뒤이어 이화여대 학생이 등장해 "학교에 대단한 공주님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빙산에 일각이었을 줄 몰랐다"며 "최순실씨의 실체와 그를 둘러싼 커넥션은 대한민국 심장부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고 말했다.[48]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파업 중인 철도노조의 시국선언도 이어졌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4·16연대 시국선언>을 공개하며, "세월호 참사와 국정 농단이 연결돼있다는 의혹이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고 밝히며, "최순실을 비롯한 모든 부역자들을 당장 구속"할 것을 요구하고 "진실을 밝힐 때까지 전국에서 대자보를 쓰고 시민들과 토론하며 박 대통령 사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48]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한국사회 경제사회 안보위기 주범은 박 대통령 자신"이라며 "오늘 우리 투쟁은 우리를 사회를 지배해왔던 모든 조직과 미신과의 투쟁"으로 규정하고, "우리에겐 새로운 대한민국이 드리울 것"이라고 발언했다.[48]
이후 정치인 대표로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김종훈 무소속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도 발언에 나섰다. 노회찬 대표는 "지난 3년 8개월간 부정을 저지른 박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수사가 박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공유되고 있는데 말이 되느냐, 박 대통령이 있는 한 진실규명이 안 된다. 박 대통령이 떠나야 우리 국민들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41][2] 김종훈 무소속 의원은 "지역구인 울산에서 주민들이 서울에 올라가는 저에게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면서, "국민의 마음은 대통령 하야다", "대통령이 하야할 때까지 촛불을 들자"라고 외쳤다.[47]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통령은 나라의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의 머슴이고 대리인일 뿐"이라며 "그런 그가 마치 지배자인 양, 여왕인 양 상황 최순실을 끼고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을 우롱하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세 사람 외에도 더불어민주당의 표창원, 송영길, 박주민, 정춘숙 의원, 정의당의 이정미, 김종대 의원 등 야당 정치인들이 집회에 참여하였다.[2][48] 이날 청계천 촛불집회는 팩트TV (홈페이지, 유튜브, 아프리카TV)와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에서 생중계하였다.[49][50][51]